2008. 9. 16. 13:09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 --- 김선규 님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Category :: 영화, 책/책


누군지 기억은 안나지만 몇 년 전에 누군가가 준 책이다.
그 때는 그냥 그저 그렇게 읽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니 참 좋다..

이 책을 쓰신 피에르 신부님은 프랑스 사람인데, 프랑스에서 매년 하는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뽑는 투표에서 7번이나 1등을 하셨다고 한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19살에 모든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셨다. 나치 치하에서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셨고, 그 후에는 모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하시던 분이시다.
이 책은 그 분의 삶과 신학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주 좋다.
그 분의 삶이 참 본받을만하고, 그 분의 신학은 이해하기 쉽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복음의 본질을 잘 설명하고 있다.

총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1부 상처입은 독수리들
상처입은 독수리들은 우리 인간을 의미한다. 저 높은 창공을 날고 싶어하고 날 수 있지만, 상처때문에 날지 못하는 독수리들. 그것이 피에르 신부가 말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팡세에서 파스칼이 말한 쫒겨난 왕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이 장에서는 피에르 신부님이 시작한 엠마우스 운동과 여러 상처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확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 복음 등 신학적인 질문에 대한 피에르 신부님의 생각들이 담겨있는 장이다. 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딱딱한 신학을 참 알기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 나라의 많은 교회에서는 펄쩍 뛸만큼 과격한 내용도 있다. 교회 밖의 구원이라던가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 속죄론 같은 것에 대한 부정 등. (사실 한국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여러 가지 신앙은 지극히 편협하고, 전 세계 기독교회의 입장과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아주 소수파 중에 하나이다.) 이 장과 다음 장에는 정말 너무나 주옥같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 몇 구절만 살펴보자.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성 프랑체스코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의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또는 노동조합 책임자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또, 우라가 그동안 전통적으로 받아들였던 그리스도에 대한 대속에 대한 생각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보통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을 했으니, 그 잘못을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이다. 그런데 피에르 신부는 그리스도가 값을 지불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하니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도둑질한 것이다. 이 책에서대로라면 하나님이라는 전원으로부터 코드를 뽑아버린 로보트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속이란 도둑맞은 자가 도둑이 벌을 받는 걸 바라지 않고, 오히려 강렬한 사랑으로 도둑이 훔친 것을 되돌려주도록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그리스도를 말한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전원이 차단되어 실의에 빠진 인간에게 사랑하는 능력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참 공감이 되는 설명이다. 나도 피에르 신부처럼 오랫동안 전통적인 대속에 대한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 계속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보여준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받은만큼, 아니 가급적 더 많이 다른 사람에게 갚아주길 원한다.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미움에는 더 큰 미움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보여준 방식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가장 높은 분이지만 가장 낮아지는 것. 나는 나의 이런 이해와 피에르 신부님의 견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뭐.. 어떤 사람들은 이단 하나 생겼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3부 만남을 향하여
3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중에서 기도에 대한 구절이 나의 관심을 특히 끈다. 나는 예전부터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해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취향때문이다. 나는 큰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것이 잘 맞지 않을 뿐이다.) 그 구절을 옮겨보면,

"사실 끊임없는 기도의 은밀한 상태 속에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모든 간청들이 우리에게 깃들여 있으므로, 그 간청들을 큰 목소리로 소리내어 표현할 필요는 없다. 소리내어 하는 기도는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또, 용서에 관한 이야기도 참 마음에 와 닿는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하느님은 탕자의 아버지와 같다. 우리의 잘못이 어떠한 것이든 그분의 용서는 언제나 주어진다.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같다. 항국적인 용서의 상태인 것이다. 용서란 하느님의 모성적 면모인 셈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의 아이를 용서한다."


요즘들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그림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 다같이 조금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자 노력하는 것. 지금 내 모습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런 모습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