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9. 11:23

진로학교 소감문 당선(?) ㅎㅎ 기뻐요.-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진로학교 첫번째 소감문을 씁니다. 6강까지 수강하는 내내 저는 마음을 두드리는 새로운 질문들을 자녀에게 적용하기보다 제 자신에게 계속 묻고 자서전을 읽는 심정으로 제 삶의 여정에 끝나지 않는 요구들을 담담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어제 들은 6강을 시작으로 소감문을 정리하면서 귀한 강의들을 제 속에 잘 내면화하고 삶의 관점과 행동반경에 발전적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임영신님을 본 첫 느낌은(생방) 가수 권진원님과 닮은, 선이 가늘고 여성적인 미모에 독특한 강한 흡인력과  보이는게 다가 아닌... 매력을 느끼며 인생은 진정 불공평한 것인가? ~~~하는 씁쓸함이었습니다. ㅎㅎ

저런 외모와 분위기에다 공정여행가라는 남다른 풍성한 인생여정의 전문 이력이... 듣고 보니 저와 나이도 같은게 아닌가요 애도 셋이고 남편도 훌륭하시고... 강의가 진행되면서 약간 질투와 시기심이 불쑥 들어설 뻔 한 저의 부끄러운 반응에 스스로 놀라면서 지난 20대를 떠올리고 30대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인생이 여행이고 나의 정체성은 "나그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 40이 넘도록 해외여행은 한번도 못해 보았습니다. 국내여행도 새로운 만남을 전제로 하는 여행은 다섯 손가락에 들고 관광 역시 몇 차례일 뿐입니다.

20대 때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여러 번이었지만 부모님께서 너무나 완강히 반대하시고 제 인생 전체에 대한 걱정으로 여기셔서(제가 일단 떠나면 메니아가 될까봐^^;;) 그 비밀한 걱정이 저도 부담되어 뛰쳐 나가진 못했습니다. 졸업후에는 현장에서 진로를 찾으라고 해외에 보내시려고 까지 했지만 제 모험심은 다시 안정감에 묶여서 여행은 제 인생과 넘 먼 얘기가 되어버렸지요.

결혼 후에도 기회는 있었지만 여행의 초대에 계속 사양거절...(애셋이라는 부담...물론 재정도)ㅎㅎ 작년에는 여행가 경력이 있는 후배가 애셋두고 함께 주부휴가 다녀오자고 했지만 간이 콩알만해진 저로서는 아이들을 누군가 맡아준다면 모를까 절대 불가라고 오히려 설득했지요. 남편은 뒷걱정말고 다녀오라지만 ㅎㅎ 친정부모님과 애들 고생시킬 생각에 엄두가 안 나더군요.

일상이 흔들리는 것이 긴장되고 모험을 저지른 후 뒷수습할 힘겨움이 걱정되고 미리 채워버리는 뒤죽박죽 그림은 소심함을 더 강화시키곤 했습니다. 도전이라는 것과 원래 안 친했지만 도전은 남편 것, 애들이 새도전을 원하면 지지해주는 것 정도로 내 몫은 후방노릇하는거 잘 하자~였지요.

시민운동활동가로서 열심히 9년을 살아왔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삶의 본질을 흔드는 질문에 직면하고 용기있는 선택을 한 임영신강사님의 10여년의 여행 여정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선물은 하나님 앞에 손을 내미는 자가 받고 풀어 볼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한비야씨의 강의를 들었으면 책보다야 간단하게 재미났을지 모르지만(그분은 멋있는 사람이지만 전 그분의 책을 열지는 않았을 겁니다.) 임영신님의 당당함과 수려한 말솜씨가 좀 거부감이 들더라도 ^^:; 갠적으로 같이 울고 웃고 평화의 희망을 꿈꿀수 있었던 이유는 그 분 삶의 겸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나눔의 근거는 자신의 탁월한 실력이나 주도면밀한 계획-사업성-능력이나오랜 꿈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장기에 꿈이 없었다는 약한자의 음울한 배경이나 30에 이르도록 해외여행을 못해 보고 아시아에 문외한이었다는 경험과 재정적 지원이 가시적이지 않은 조건이나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진 홀가분한 여행전문가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이고 단지 가족들이 걱정어린 지지를 해주고 있다는 현실이 생명력 있는 나눔이었습니다.

주변에 보면 20대에 평화운동을 하러 방학동안에 떠나는 청년들, 30대에 시간과 재정을 감수하고 심플하게 떠났다 오는 싱글들을 보면  격려를 하는 입장이지만 제 현실은 때때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에 씁쓸한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이 그런 선배의 경험을 따라 가면 좋겠다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데 임영신님의 30이 넘어서 모험으로 떠난 인생을 듣자니 지금 이미 시작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평화의 꿈이 더욱 실감나고여행이라는 것이 오감이 즐거운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빚어질 때 삶의 한 부분으로 엮어진다는 사실이 내 얘기처럼 설레이고 좋았습니다. 

책이나 전해들은 얘기로 평화여행을 알았다면 또하나의 좋은 것으로 여기고 말았을 텐데 강사님께 직접 들으니 우리나라가 정말 경제적으로나 사회의식이 많이 성숙해졌구나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희망을 꿈꾸기에 좀더 열렸구나 감사한 맘이 들었습니다.          

전 20대에는 아프리카와 아랍을 포함한 아시아권과 동유럽, 중앙아시아에 대해 관심을갖기 시작했었고 분쟁지역이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대해 걱정하는 맘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북한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맘 뿐이었고 mbc에서 한밤중에 방영하는 <W>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고 사회적으로 빚진자의 정체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W라는 알파벳은 weak(약자), woman(여성) 등 주로 세상(world)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주제로 다루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시나마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 악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종영한 것에 대해 넘 미안하고 서명운동이라도 해서 살렸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생각에 머물고 끝나 버렸습니다.

임영신님의 강의를 들으며 한 시민운동가가 "평화공정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갖은 것이 그 시작은 미약했지만 얼마나 현세상이 요구하는 절박한 일인가 가슴 절절했고 뭐든지 20년 앞서는 일본이 "PEACEBOAT"를 운항하는 것이 얼마나 발전하고 성숙한 면모인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전 성장기를 나름 감성적이고 자유롭게 지냈고 사회적으로 연약했습니다. 근거없는 낙천주의자였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몸이 고단한 것은 겁내고 가슴과 머리의 활동만 좋아했습니다. 대학까지 줄곧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사실 매우 게으르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도전해 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몸도 둔하고 불편에 예민하고 모험에 따르는 걸림돌에 늘 주저 앉은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을 생각할 때 미안하지만 저보다 훌륭하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면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경험을 많이 해서 사소한 불편이나 불안요소에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며 생각하는 방향이나 방법이 넓고 명분이 있고 늘 겸허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늘 관계지향적이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맘이 깊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이런 바람들은 제가 사는 인생여정을 나그네처럼 살아야한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이룰 것을 다 가져야 한다는 야망이 있다면 지금 저의 삶은 참 더없이 지치고 허망할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이 땅의 깨어짐을 잊지 않고 가난과 질병과 억압의 분쟁 속에서 희망를 꿈꾸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일락님 가족사진입니다. ^^ )

그것을 위해 제가 가르치는 학생에게뿐 아니라 삼형제와도 지속적으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지구촌의 빚진자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 가는 삶에 대한 관심이 흘러가게 해야겠습니다.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쉴새없이 듣고 강사와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열혈자원봉사자 무급 상근자anny님 말고는 그렇게 오타 없이 스페이스바 없이 좔좔좔 (초)속달변이신 분은 처음이다 감탄했습니다.^^;;

연약한 몸짓으로 평화를 일구는 임영신님의 개척하신 좁은 길을 따라 가고 싶습니다. 열심히 다고진 걸음으로 한걸음한걸음 내딛는 평화를 위한 공정여행에 우리 사회가 동참하며 국가적 체질도 더욱 건강해지고 OECD국가의 정체성이 선하게 성숙하면 좋겠습니다. 

2010. 12. 27. 11:16

공정여행가 임영신 진로학교 6강

 


12월 9일, 이제 진로학교 강의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강의에 임하시는 강사분들의 열정과 수강생들의 진지한 태도, 고민은 변함없음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주 강의는 많은 분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임영신 공정여행가께서 해주셨다. ‘공정여행’ 이란 단어 자체가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말이었지만 그의 강의를 들은 후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좋은 여행, 나아가 성숙한 여행에 대한 관심과 소망이 생겼음을 확신한다.

먼저 공정여행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본다면, 기존의 여행이 가진 한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봤을 때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우리가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로 동남아시아의 멋진 휴양지와 리조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곳에서 소비하는 돈이 주로 그 지역주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매우 낮은 대우를 받으며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단순노무자가 되는 것이다. 그 돈은 그 곳을 개발한 다국적 기업에게 대부분 돌아갈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과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공정여행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의 주된 가치는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단순한 소비가 아닌 관계 맺는 여행”으로 현지인들의 인권과 생명, 곧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그 속에 어울리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임영신 여행가는 2003년 이라크 평화여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나섰으며, 지금은 이매진피스라는 단체에서 많은 이들의 여행 또는 삶을 멘토링하며 아름다운 발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진로학교 강사분들이 모두 그랬듯이 임영신 여행가님도 지금의 삶이 있기까지는 몇몇의 계기와 성장과정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 계기는 17살 때의 일이다. 여행가님의 유년시절은 결코 밝지 않았다. 어두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매우 내성적이고 조금은 어두운 면이 있었다. 그 시절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은 책 읽기와 일기쓰기였다. 그러던 중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 곳에서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해주고 존귀하게 대해주며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여행가님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우며, 보다 가치 있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단순히 청소년기의 친구들을 돕는 일을 꿈꾸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또 사회를 돌아보면서 한국근현대사, 교회사를 알게 되고,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과 다른 모습들, 부정의한 모습들을 접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 정의와 윤리에 대한 가치와 열망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 당시 사회의 어려움에 대해 책임을 실천하는 교회에 다니면서 영향을 받고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명확했던 것은 이 사회의 바닥에서 남을 돕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때마침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에 우연히 보게 된 기독신문을 통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에 지원을 하여 간사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여행가님은 시민운동을 재미있게 배웠고, 일을 하는 가운데 자신이 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근무하던 단체의 총무님을 통해서 그저 직장의 상사가 아닌 인격적이고 따뜻한 멘토링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후 여행가님의 삶에도 하나의 소중한 가치와 목표가 되었다.


첫 시민단체인 기윤실 이후 녹색연합,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등을 거치며 약 10년 가까이 계속해서 시민운동을 하게 되었다. 또한 단순히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닌 각각의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 자연과 생태, 재활용, 여성문제, 인권문제 등 - 본인의 삶에서 통합적으로 융화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던 여행가님의 삶에 드디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 처음 갔었던 일본 여행이었다. 바로 기윤실 간사로 활동할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위안부 할머니 사건의 전범재판이 열리는 현장으로, 깨어 있는 지식인들과 역사가들이 그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일본 할머니들 뿐 아니라, 캄보디아, 필리핀, 중국, 대만에서 오신 할머니들께서 같은 아픔을 나누는 것을 보고, 여행가님은 이 문제가 단순히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의 문제이고 아시아 전체의 아픔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론으로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 여행이 여행가님의 삶의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계기였다.

이후 대학원에 가면서 평화와 아시아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으며 이후 두 번째로 가게 된 여행이 2003년 이라크 평화여행이었다. 여행가님에게는 얼마나 많은 나라를 여행했는지 보다는 얼마나 깊은 여행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가 여행지에 다다를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이라크 현장에서 보고 겪으신 일들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 정도로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과 깊게 소통하는 법, 내가 원하는 대답을 우선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 어디를 가는가보다 그 여행지에서 누굴 만나고 누구와 함께하는가의 중요함 등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상대방을 100%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게 된 시간이었다. 이라크에서 처음 만난 가이드 분이 건넨 “샬롬” 이라는 인사와,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땅을 떠나야하는 여행가님을 향해 “기억할게요!” 라는 인사말을 남긴 아이들까지 모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여행은 나를 바꾸고, 성숙한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는 상태에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인 이라크로 평화여행을 다녀온 그 분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던 여행이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느꼈다. 특히, 아이들의 진로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들의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고 앞길을 고민하게 되는 기회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하고 청산유수 같은 이야기로 긴 시간을 풍성하게 채워준 여행가님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다만 자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명확하다고 하셨다. 삶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우리아이들의 진로 역시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지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을 그저 관광지에서 구경하고 소비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새롭고 따뜻한 울림을 주는 귀한 시간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여행가님은 일본의 피스보트를 소개해 주셨다. 1년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세계를 여행하고 또 배 안에서는 1년 365일 새로운 만남과 배움의 장이 열린다. 그 배의 일정을 계획하고 조율하는 일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모두 맡아서 하고 있다. 그 긴 항해를 통해 또 하나의 착한여행, 즉 공정여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공정여행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여행을 어디로 가는 것보다 어떻게 가는 것을 더욱 고민하면서 말이다.




2010. 12. 15. 09:45

소개하고픈 사람, 이재석씨 아시나요?


교육자료로 공유하겠다고 퍼온 글이에요^^

지난해 이재석씨의 수상 광고작을 보고 정말 감탄했었지요.

이재석씨의 이름을 처음 안 것은 부메랑 광고인데(2009깐느광고제 등 수상)

전쟁에 대해 그렇게 표현할수 있다니 넘 고맙기까지 했답니다. 

http://ideabulb.co.kr/10051746625?Redirect=Log

 

그동안 작품이 많아졌네요.
그의 이력을 조금 들었었는데 이제 책도 나왔다니 아주 고무적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광고에 담긴 철학의 일관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의 초등학교시절,그리고 입시위주의 중고등시절

그의 진로고민은 어떠했을까요?

 

물론 그는 남다른 노력과 또 재능과 운도 따랐을지도 모릅니다.

책한번 읽어봐야겠어요.^^

광고천재 이제석, 학고재 (근데, 책표지가 잘못 나온건지 온갖 데에서 '이재석'이라는데 책은 '이제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펌글

 

 

이사람이 이재석씨입니다.

국내 지방대를 나와서 소위 스펙이 딸려 미국에 가게되고
거기서 성공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네요.

 

한번 보세요.

 

참고로 사진들은 구글링입니다.

 

 

일명 부레랑 광고입니다.

자기가 겨눈 총이 결국 자신한테 온다는.....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에베레스트일수도 있겠네요...

참 기발하죠??? 이걸 오르면 에베레스트를 정복한겁니다.

 

 

 이건 공해는 총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내용인데...오호~~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아프리카에선 물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한다는 내용인데...

아프리카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참으로 기발하고, 알기쉽고, 기억에도 오래 남네요.

 

 

 

요건 지구를 초로 만들어서 지구가 더워지면 이렇게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단 한그루의 나무도 보호하자...요런 내용

 

 

 

요건 독도에 자꾸 눈독들이는 원숭이들을 묘사한겁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담배를 피면서 계속 줄수록 당신의 생일도 줄어듭니다.

 

 

 

많은 포크와 나이프는 사람수입니다. 우리 한끼식사의 소중함이죠. 다른사람들은 이 하나를 나눠먹으니...

음식남기지 마시고, 항상 감사해야겠어요. 아프리카 아이들도 많이 도와줘야겠고요...

 

 

 

요건 신문광고인데....신문지가 누군가에게는 이처럼 담요가 될 수 있다..

 

 

요건 쓰레기 봉툰데..아주 잘 늘어나고 많이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지퍼락인데...신선함을 이만큼 오래 가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유리창을 이걸로 닦으면 진짜 잘 닦일거 같네요.

 

 

우리가 원조해준 식량으로 미사일을 쏜다는.......

 

 

환경 파수꾼임.. 요기에 버리셈..

 

 

참 대단하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바로 머리속에 들어오면서 돈도 별로 안드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재석씨도 스펙에 밀려 외국에 유학을 가서 성공한 케이슨데..

우리나라에 이재석씨를 능가할 제 2의 스티브잡스도 많을텐데 스펙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너무 많은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기도 합니다.

 

뭐 점점 좋아지겠죠??

 

암튼 이게 진짜 상상력이 아닐까요???

 

 

출처: http://blog.daum.net/kajas0524/40

2010. 12. 10. 21:39

진로학교 6강 소감문

만감이 교차하는 자화상을 들여다보며  --- 공정여행가 임영신님의 강의를 듣고 

진로학교 첫번째 소감문을 씁니다.
6강까지 수강하는 내내 저는 마음을 두드리는 새로운 질문들을
자녀에게 적용하기보다 제 자신에게 계속 묻고
자서전을 읽는 심정으로 제 삶의 여정에 끝나지 않는 요구들을
담담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어제 들은 6강을 시작으로 소감문을 정리하면서
귀한 강의들을 제 속에 잘 내면화하고
삶의 관점과 행동반경에 발전적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임영신님을 본 첫 느낌은(생방)
가수 권진원님과 닮은, 선이 가늘고 여성적인 미모에
독특한 강한 흡인력과  보이는게 다가 아닌...매력을 느끼며
인생은 진정 불공평한 것인가? ~~~하는 씁쓸함이었습니다. ㅎㅎ

저런 외모와 분위기에다 공정여행가라는 남다른 풍성한 인생여정의 전문 이력이...
듣고 보니 저와 나이도 같은게 아닌가요 애도 셋이고 남편도 훌륭하시고...
강의가 진행되면서 약간 질투와 시기심이 불쑥 들어설 뻔 한
저의 부끄러운 반응에 스스로 놀라면서 지난 20대를 떠올리고 30대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인생이 여행이고 나의 정체성은 "나그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 40이 넘도록 해외여행은 한번도 못해 보았습니다.
국내여행도 새로운 만남을 전제로 하는 여행은 다섯 손가락에 들고
관광 역시 몇 차례일 뿐입니다.

20대 때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여러 번이었지만
부모님께서 너무나 완강히 반대하시고
제 인생 전체에 대한 걱정으로 여기셔서(제가 일단 떠나면 메니아가 될까봐^^;;)
그 비밀한 걱정이 저도 부담되어 뛰쳐 나가진 못했습니다.
졸업후에는 현장에서 진로를 찾으라고 해외에 보내시려고 까지 했지만
제 모험심은 다시 안정감에 묶여서 여행은 제 인생과 넘 먼 얘기가 되어버렸지요.

결혼 후에도 기회는 있었지만 여행의 초대에 계속 사양거절...(애셋이라는 부담...물론 재정도)
ㅎㅎ 작년에는 여행가 경력이 있는 후배가 애셋두고 함께 주부휴가 다녀오자고 했지만 
간이 콩알만해진 저로서는 아이들을 누군가 맡아준다면 모를까 절대 불가라고 오히려 설득했지요.
남편은 뒷걱정말고 다녀오라지만 ㅎㅎ 친정부모님과 애들 고생시킬 생각에 엄두가 안 나더군요.

일상이 흔들리는 것이 긴장되고 모험을 저지른 후 뒷수습할 힘겨움이 걱정되고
미리 채워버리는 뒤죽박죽 그림은 소심함을 더 강화시키곤 했습니다.
도전이라는 것과 원래 안 친했지만 도전은 남편 것,
애들이 새도전을 원하면 지지해주는 것 정도로
내 몫은 후방노릇하는거 잘 하자~였지요.

 
시민운동활동가로서 열심히 9년을 살아왔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삶의 본질을 흔드는 질문에 직면하고 용기있는 선택을 한 임영신강사님의
10여년의 여행 여정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선물은 하나님 앞에 손을 내미는 자가 받고 풀어 볼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한비야씨의 강의를 들었으면 책보다야 간단하게 재미났을지 모르지만
(그분은 멋있는 사람이지만 전 그분의 책을 열지는 않았을 겁니다.)
임영신님의 당당함과 수려한 말솜씨가 좀 거부감이 들더라도 ^^:; 
갠적으로 같이 울고 웃고 평화의 희망을 꿈꿀수 있었던 이유는   
그 분 삶의 겸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나눔의 근거는 자신의 탁월한 실력이나 주도면밀한 계획-사업성-능력이나
오랜 꿈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장기에 꿈이 없었다는 약한자의 음울한 배경이나
30에 이르도록 해외여행을 못해 보고 아시아에 문외한이었다는 경험과
재정적 지원이 가시적이지 않은 조건이나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진 홀가분한 여행전문가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이고
단지 가족들이 걱정어린 지지를 해주고 있다는 현실이
생명력 있는 나눔이었습니다.


주변에 보면 20대에 평화운동을 하러 방학동안에 떠나는 청년들,
30대에 시간과 재정을 감수하고 심플하게 떠났다 오는 싱글들을 보면  격려를 하는 입장이지만
제 현실은 때때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에 씁쓸한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이 그런 선배의 경험을 따라 가면 좋겠다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데
임영신님의 30이 넘어서 모험으로 떠난 인생을 듣자니 
지금 이미 시작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평화의 꿈이 더욱 실감나고
여행이라는 것이 오감이 즐거운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빚어질 때
삶의 한 부분으로 엮어진다는 사실이 내 얘기처럼 설레이고 좋았습니다.

책이나 전해들은 얘기로 평화여행을 알았다면
또하나의 좋은 것으로 여기고 말았을 텐데 강사님께 직접 들으니
우리나라가 정말 경제적으로나 사회의식이 많이 성숙해졌구나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희망을 꿈꾸기에 좀더 열렸구나
감사한 맘이 들었습니다.        
  
전 20대에는 아프리카와 아랍을 포함한 아시아권과 동유럽, 중앙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고 분쟁지역이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대해 걱정하는 맘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북한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맘 뿐이었고
mbc에서 한밤중에 방영하는 <W>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고
사회적으로 빚진자의 정체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W라는 알파벳은weak(약자), woman(여성) 등 주로 세상(world)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주제로 다루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시나마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 악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종영한 것에 대해 넘 미안하고 서명운동이라도 해서 살렸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생각에 머물고 끝나 버렸습니다.

 임영신님의 강의를 들으며 한 시민운동가가
평화공정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갖은 것이 그 시작은 미약했지만
얼마나 현세상이 요구하는 절박한 일인가 가슴 절절했고
뭐든지 20년 앞서는 일본이 "PEACEBAOT"를 운항하는 것이
얼마나 발전하고 성숙한 면모인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전 성장기를 나름 감성적이고 자유롭게 지냈고 사회적으로 연약했습니다.
근거없는 낙천주의자였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몸이 고단한 것은 겁내고 가슴과 머리의 활동만 좋아했습니다.
대학까지 줄곧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사실 매우 게으르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도전해 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몸도 둔하고 불편에 예민하고 모험에 따르는 걸림돌에 늘 주저 앉은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을 생각할 때 미안하지만 저보다 훌륭하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경험을 많이 해서
사소한 불편이나 불안요소에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며
생각하는 방향이나 방법이 넓고 명분이 있고
늘 겸허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늘 관계지향적이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맘이 깊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이런 바람들은 제가 사는 인생여정을 나그네처럼 살아야한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이룰 것을 다 가져야 한다는 야망이 있다면
지금 저의 삶은 참 더없이 지치고 허망할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이 땅의 깨어짐을 잊지 않고
가난과 질병과 억압의 분쟁 속에서 희망를 꿈꾸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 제가 가르치는 학생에게뿐 아니라 삼형제와도 지속적으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지구촌의 빚진자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 가는 삶에 대한 관심이 흘러가게 해야겠습니다.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쉴새없이 듣고 강사와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열혈자원봉사자 무급 상근자anny님 말고는
그렇게 오타 없이 스페이스바 없이 좔좔좔 (초)속달변이신 분은 처음이다
감탄했습니다.^^;;

연약한 몸짓으로 평화를 일구는 임영신님의 개척하신 좁은 길을 따라 가고 싶습니다.
열심히 다고진 걸음으로 한걸음한걸음 내딛는 평화를 위한 공정여행에
우리 사회가 동참하며 국가적 체질도 더욱 건강해지고
OECD국가의 정체성이 선하게 성숙하면 좋겠습니다. 

2010. 11. 6. 09:31

20 : 9980 --- 김규항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만들고 있는 김규항씨가

한겨레 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

 

( 2009/08/06 ) 출처는 한겨레신문 혹은 규항넷이구요~

 

20 : 9980

 

“혹시 오늘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근래 교육관련 강연을 하면 꼭 청중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부모들도 교사들도 심지어 교육운동하는 이들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그토록 열중하는 아이들의 미래에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우리가 직업이 몇 개인지조차 모르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거나, 답은 1만개다. 최근 통계청 자료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부모들이 제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몇 개일까? <고래가그랬어>에서 조사해본 바로는 많이 잡아 20개다.

직업이 1만개라는 건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고작 20개이니 9980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 즉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 직업에 온전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리 부모는 내가 00가 되길 바랐지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라도 지었는가?

쿠바의 청소부는 의사보다 월급이 많고 노르웨이의 버스기사는 대학교수보다 월급이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월급 따위로 직업의 귀천을 가르진 않지만, 청소부나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여긴 쿠바나 노르웨이가 아니라 한국이라고? 그렇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청소부나 버스기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한국의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서민 부모들은 울분에 찬 얼굴로 교육 기회의 불균형과 격차를 말한다. 우리는 이른바 일류대 신입생이 해가 다르게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아이의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20개의 직업들을 독식해가는 그 부자 부모들은 진정 우월한 걸까? 일찌감치 제 부모의 생각을 받아들여 제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그런 직업들에 안착하는 그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사람은 두 가지 경로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나는 관계다. 나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관계 속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남 보기에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직업이라 해도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그 인생은 불행하기만 하다. 요즘처럼 20개의 직업이 적성도 재능도 아닌 성적순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선 20개의 직업은 오히려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직업들만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마치 아이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 공부는 여러 적성 가운데 하나이며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 직업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극히 일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다른 게 있다는 말일 뿐이다.

한국에는 1만개의 직업이 있다. 그건 앞서 말했듯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며, 내 아이가 그 1만 개 직업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적성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할 일은 되든 안 되든 20개 직업만 생각하며 아이를 닦달하는 게 아니라, 9980개의 직업까지 두루 살피며 아이가 제 적성과 재능에 가장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2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보다는 998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이 훨씬 높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