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16. 13:12

미하엘 엔데의 '모모' --- 김선규 님

[미하일 엔데] 모모

Category :: 영화, 책/책


시간이 항상 모자란 우리에게 들려주는
모모의
시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와 짐 크노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였던 것도 같다. 엔데의 소설들을 보고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싶어 하고, 나도 짐처럼 원래 왕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던 것을 보면, 중학생보다는 국민학생에 가깝지 않았을까? 최소한 정신연령에서는 그렇다고 생각된다. 하여간 예전에 내가 어렸을 적에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지금 내 기억 속에는 당시 최대의 특수효과라고 선전하던 것과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큰 종처럼 맑은 울음소리를 내는” 커다란 흰 용의 모습만 남아있다. 나는 영화는 보지 못하고 당시 문고판으로 나왔던 책을 통해서 “끝없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나도 그런 책을,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 했다. 짐 크노프도 그즈음에 만나게 되었다. 사방이 몇 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에 살고 있는 까만 소년 짐도 “끝없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매료시켰다.

미하일 엔데라는 이름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ABE”라는 이름으로 나온 전집류였는데, 주옥같은 소설들이 엄청나게 많이 실려 있었다. 지금은 안 보이는 걸 보니 출판사가 망했거나, 이 시리즈가 망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이 시리즈로 읽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훌륭한 시리즈가 왜 망한 걸까? 어쨌든, 그때에는 반지의 제왕이 끝없는 산, 끝없는 강 이런 시리즈로 되어 있었고, 호비트 이야기까지 총 7권인가 8권으로 되어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정말 “끝없이” 긴 이야기였다. 이 명작 시리즈에 “모모”가 있었다. 순전히 미하일 엔데의 이름을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언제나 정말 소중하고, 정말 아름답고, 정말 귀중한 것들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모모”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 느낌은 그저 재미있는 상상력이구나 정도였다. 아마도 시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모모
갑자기 회사에서, 주변에서, 서점에서 “모모”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나는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기 드라마에서 “모모”가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는 전혀 몰랐다. 우리를 시간에 쫓기게 하는 원흉 중에 하나인 텔레비전이 시간을 찾으려는 “모모”를 소개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모모”가 “모모”에서 그토록 열심히 뛰어다닌 이유는 빼앗긴 시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도 무척이나 시간을 아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시간표를 적어 넣고, 누구누구의 시간 관리법이니 아침형 인간이니 하는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토록 시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행복을 사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작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데 말이다. 시간을 저금할 수 없는 것처럼..

시간 이야기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여기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고 그것에 절대적으로 묶여 있어서 이 시간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모모”에서 엔데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의 난제였던 시간을 너무나 환상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풀어낸다. ‘언제나 없는 거리’와 ‘아무 데도 없는 집’, 그리고 그 이름도 어려운 ‘세쿤두스 미누티우르 호라 박사’, 귀여운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모모”가 경험한 환상적인 “시간”까지. 우리는 엔데의 상상력을 통해서 시간에 대해서 약간은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지금부터 1,500년 전에 어거스틴은 시간에 관한 날카로운 정말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고백록”을 읽어보면, 그는 정말 시간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과연 우리가 ‘현재’, ‘미래’, ‘과거’라고 구분하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는 그의 “고백록”을 보면서 그의 천재성을, 인간 이성의 날카로움을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모”에서 엔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 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우리는 엔데를 통해서 시간에 대한 통찰력이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모모”가 들려주는 시간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모모는 우리에게 들려준다.

“호라 박사님, 전 정말 몰랐어요. 모든 사람의 시간이 그렇게...”
모모는 적당한 말을 찾으려 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렇게 위대하다는 걸요.”

나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난 정말 몰랐다. “모모”가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인줄을 말이다.

- 알라딘에서 북 리뷰 이벤트를 하더군요.
백수니 책 값이라도 벌자하고 쓴 글입니다.
그냥 끌려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네요.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느끼나 봅니다. 예전에는 별 감응이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