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21. 13:25

영화 <크로싱>을 보고


어제 크로싱을 보았습니다.

한 탈북자의 사연을 사실적으로 잘 그린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강가로 소풍을 나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
아버지와 아들이 축구를 하는 장면등은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탈북자들이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사람사는 고향의 아름다움을 담담하게 영상으로 표현된 것은 놀랄만 했습니다.

비록 단칸방에 부억과 침실 그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궁색한 살림살이 이지만,
작은 마당엔 개도 있고, 집을 나서면 큰길을 따라 동네친구들이 모여 축구도 합니다.

북한의 모든 것이 괴물들이 사는 지옥의 나라로 그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영화제작자에게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탈북'이 훌륭한 영화의 소재가 될만큼,
북한의 삶이 찌들고 피폐한 것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개를 잡아먹는 장면부터,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더군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한 바가지는 흘렸습니다.

한국도 십여년전에 IMF를 겪었습니다.
나는 당시에 잘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머나먼 외국으로 살러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난의 행군시대를 거치며, 외국으로 살러나갔던 탈북인들과 똑 같은 처지입니다.
내가 영화을 보면서 자꾸만 눈물이 났던 이유는 탈북인들과 제 처지가 비슷한 까닭입니다.

우리 가족이 헤어지는 일은 없었지요.
우리집사람은 내가 회사출장을 가더라도 따라가겠다며 꼭꼭 붙어다녔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집사람 성격은 답답합니다. 그리고 식구가 전체로 옮겨다니는 것이 돈도많이 들고, 여러가지로 힘들고,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식구가 같이 움직였던 것이 옳았구나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본다음 여러가지 상념에 잠겼습니다.


탈북인과 나의 삶은 유사성은 많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휴가를 내고 비행기삭을 내어서 고향을 찾아가 볼 수 있습니다.
탈북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나요?

북유럽에는 레밍스라는 재미있는 설치류가 살고 있습니다.
이 들쥐는 개체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때를 지어 절벽으로 몰려가 모조리 자살한답니다.
앞서가는 쥐를 뒷따라가는 쥐가 멈추지 않고 멍하게 줄지어 따라가서 절벽으로 떨어진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레밍스보다 얼마나 더 똑똑할까요?
별로 똑똑해 보이지 않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이 영도하는 사회는 레밍스집단보다 별로 뛰어나 보이는 구석은 없습니다.

북한 속의 삶은 왜 쉽게 비극적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일까요?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 봅니다.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정치의 자유.
자유란 내가 이러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요렇게 살아갈 자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에서 실현됩니다.

한가지 사상을 강요하고, 생각이 다른 놈은 잡아족치는 그런 사회는 레밍스집단 보다 못합니다.

나는 북한이 바뀌기를 소원합니다.
탈북인들이 고향을 마음대로 방문하거나 또는 고향에 되돌아가서 살 수 있도록 바뀌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크로싱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