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16. 20:46

그 어려움이 기초실력을 흔드는 초등개정교과서

제가 어제 우리 셋째(초1) 수학 단원평가 시험지 보고

또 솟구쳐 오르는 분노에 아이 앞이라 속으로 숫자를 세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더구나 이렇게 교과서 편성 때문에 커질 줄은 예전엔 몰랐습니다.

큰 아이 저학년 때는 애가 잘하니까,

둘째는 좀 늦되거니 하고...말았는데

세번째가 되다 보니 좀 기준이 생겼는지

애가 형편없는 점수를 밥먹듯 하니 원인분석 들어가고

교과서 내용 자체와 시험평가문제의 심화 정도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1학년 1학기 때에도 어이 없었는데

역시 2학기 되니까 난이도 스킵의 정도가 가속이 붙습니다.

물론 잘 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직 의식 못하시거나

3학년 정도 되어 사회과목과 수학의 난이도에 당황하시게 될겁니다.

당근 우리 둘째의(초3) 학습의욕 저하는

수학과 사회과목에 집중됩니다.
비록 일기장과 독서장에 외계의 맞춤법을 보여 주지만

국어평가의 결과는 그나마 우수합니다. 독해능력은 되나 봅니다.
그런데 2학기 시작되고 수업시간에 좀 멍때리는지

일기장에 샘께서 다정하게 '수업시간에 집중 좀 해다오~'

부탁하시는 댓글 남기셨네요.

아들에게 물으니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답니다.

특히 사회 말이에요. 집에서 사회영역 책을 읽지만

대충읽기의 습관 때문에 전문용어가 익혀지지 않은 거지요.

 

다시 1학년 수학 문제의 심화정도를 말씀드리지면...

지난 번에도 댓글 달았지만

이게 정말 개념을 가르치는 건지 심화평가를 작정했는지

2,3번 꽈대기는 5문제 이상이고

덧셈은 10이하 배우고 뺄셈은 한자리 수끼리 하는 아이들에게

두 자리수의 차가 5이상 나는 문제가 표를 이용해 나오고,

빌려오기 해야 가능한 뺄셈문제가 나오든지,

5단 이상의 곱셈의 개념을 알아야 풀만한 규칙성 개념 문제... 등

정말 골치가 아픕니다.

 

우리 둘째 2학년 때 풀었을까 싶은 문제들...

교과서에는 아이들 연령에 비해

점점 어려운 과정이 뚝뚝 내려오고

5학년은 말 다했지요...

 

예전에는 한글이나 그런가 했는데

이젠 선행의 영역을 검증 안하고 평준화 시키고 

평균을 높이고 심화를 바로 들이댑니다.

공부 수준이 낮다는 우리 학교가 이러니 ㅎㅎ
다른 학교는 어떨지 상상이 됩니다.

 

이제 학원도 선행은 한물 갔고 "심화"가 새마케팅의 타이틀이랍니다.

꿋꿋이 개념이라도 짚고 넘어가자는 엄마의 아들들은

단원평가에서 조차 열등생이 될 수밖에 없네요.

근데 알고보니 반애들 평균이 예전에는 90점 대가 즐비했다면

요즘은 아니라는군요. 샘들도 수고가 갑절이 되는거죠.

 

옛날 고등학교 때 수학시간이 생각납니다. 앞줄 5명을 위한 수업...

오늘 아래 기사와(기사는 원문 링크만 걸어 놓으라셔서)  

또 어떤 엄니가 교육부 장관에게 교과서에 대한 제안서를 보냈다는

펌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교원평가서 쓸 때 기타의견으로 썼는데

학교의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ㅜㅜ

이런 문제의식이 성적이 안 좋은 자녀를 둔 저만의 고민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이렇게 불가피한 교과서의 수정 과정을 어떻게 촉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초등교사가 만든 교과서, 왜 어려운가 했더니 - 오마이뉴스

2010. 9. 10. 13:37

(발췌문) '모두에게 적합한 획일적인 교육이란 없다'-기버님


이 글은  승산사 출판의 켄 로빈슨, 루 애로니카 저  < 엘리먼트 >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미의 교육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 쪽에선 자기네도 문제가 무척 많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켄 로빈슨은 교육과 자기계발 전문가로서 그 공헌을 인정받아 영국에서 기사작위를 받았습니다.

노동자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유년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인 대상의 특수학교에 다녔는데

학업성취동기가 높은 것을 인정받아 상급학교에서 일반학생들과 같이 다니면서 노동자 계층에서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


TED conference 에서 " 학교는 창의성을 죽이고 있는가" 라는 강연으로 8천만회의 download를 받을만큼

주목을 받았고 <엘리먼트>에서 창의성 교육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엘리먼트란 소질과 열정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엘리먼트만 가지게 되어도 무아지경의 행복한 인생을 살게되지만,  여기에 태도와 노력이 주어지면 사회적 성공도 이룬다는 메시지를 주는군요.


흥미있는 예시가 많았지만 간단히 일부만 인용합니다.


 " 내 주변에서 가장 머리 좋고 창의적인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학업에 뛰어나지 않앗다. 

그들 대부분은 학교를 졸업하고 잘못된 교육에서 회복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진짜 능력과 자기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영국의 리버풀에서 태어났고, 1960년대에 그곳에서 리버풀 대학교를 다녔다. 

도시 반대편에는 리버풀 인스티튜트라는 학교가 있었다.

당시 리버풀 인스티튜트의 학생중에는 폴 매카트니가 있었다.


폴은 리버풀 인스티튜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빈둥거리면서 보냈다.

방과후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대신 그는 주로 록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연습했다.


시간이 지난 후, 그건 폴에게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특히 그가 다른 지역에서 열린 학교 축제 때 존 레논을 만나 후에는 말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조지 해리슨과 함께, 이후에는 링고 스타도 합류해 비틀즈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것은 멋진 결정이었다.


1980년대 중반쯤에는 리버풀 대학교와 리버풀 인스티튜트가 모두 폐교하게 된다.

건물은 텅 빈 채 버려져 있었다.

이후에 두 장소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부활하게 되는데,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내가 다니던 학교 건물을 고급 아파트로 리모델링 했다.


내가 다닐 당시에 리버풀 대학교는 고급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으니 그건 큰 변화였다.

리버풀 인스티튜트는 유럽의 최고 예술 교육기관중 하나로 손꼽히는 리버풀 공연 예술 전문학교 LIPA로 변모했다.

LIPA의 주요 후원자는 폴 매카트니 경이다.


그가 백일몽에 빠져 십대를 보냈던 낡고 칙칙한 강의실은

 그가 당시에 꿈꿨던 것처럼 음악 또는 공연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 전 세계의 학생들로 채워졌다.


나는 LIPA의 초기 설립단계에 관여했고, 개교 10주년을 맞아 학교 이사회는 나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나는 매카트니 경에게 상을 받기 위해 리버풀로 돌아가 LIPA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나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몇 가지 내용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발견해야만 하는 이유, 많은 경우 학교 교육이 그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때때로 학교 교육은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 등을.


매카트니 경도 그날 연설을 했는데, 마침 내가 이야기한 내용애 대해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이 언제나 음악을 사랑했지만 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좋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음악 선생님들은 낡아빠진 클래식 음약을 들려줌으로써 학생들이 음악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것은 학교의 다른 수업들만큼이나 지루했다.


폴은 자신이 공교육과정 전체를 이수하는 동안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심지어 리버풀 성당의 합창단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일도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폴의 노래 실력은 합창단의 입단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정말 그럴까.

그 합창단의 실력이 정말 그렇게 대단했을까?

아니 폴이 들어가기에 실력이 부족할 합창단이라는 게 과연 세상에 있기는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매카트니의 입단을 거부했던 합창단은 나중에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2곡을 공연하게 된다.


학교에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매카트니 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의 학교 합창단도 그의 입단을 거부했다.,

그들은 엘비스의 목소리가 그들의 노래를 망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리버풀 성당의 합창단과 마찬가지로 엘비스가 다니던 학교의 합창단 역시 어떤 엄격한 선발 기준이 있었다.

어찌 됐든 엘비스를 거부했던 합창단이 얼마나 성공적이었을지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몇년 전에 나는 코미디언 단체인 몬티 파이턴 출신의 존 클리셰와 창의성을 주제로 한 강연을 여러 차례 공동으로 진행했다.

나는 존에게 그의 학창시절은 어땠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학업에는 뛰어났지만 막상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에 전부가 될 코미디에는 별 소질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에게 유머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의 유머감각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만약 이런 예들이 예외적인 경우라면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런 예들이 너무도 즐비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학업을 잘 수행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학교에 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물론 적어도 그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학교를 문제없이 잘 다니고 현재의 교육제도에 만족해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재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채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도에 그만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학교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교육계와 그 주변에서 보냈는데,

이러한 상황이 개별 교사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 중에는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어린이들로부터 당장 아주 멀찍이 떼어놓아야 할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좋은 교사들이 있고, 또 적지않은 훌륭한 교사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에게 감화를 주었고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선생님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교사들조차도 공교육 제도의 문화와 관성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교육 제도의 문제는 심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전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왔을 때, 우리 아이들 제임스와 케이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미국의 교육제도는 영국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이전에는 전혀 공부한 적이 없엇던 미국 역사와 같은 과목을 공부해야만 했다.


영국에서는 미국 역사에 관한 내용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이 불편한 주제에 대해서는 은폐하는 게 영국의 정책이다.


우리는 미국의 독립기념일 나흘 전에 미국에 도착했기 때문에 영국을 미국땅에서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축제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제 우리는 미국에서 몇 해를 보냈고 독립기념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 날에는 집안에서 커튼을 내리고 여왕의 오래된 사진을 감상하며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면에 있어서 미국의 교육제도는 영구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 나라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

세 가지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겠다.


첫 번째 특징은 특정 몇 가지 학문적 재능에 대한 강조이다.

나는 물론 학문적 재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제도는 주로 언어와 숫자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논리적 추론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능력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 지능은 이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하다.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두 번째 특징은 과목 간의 위계 서열이 있다는 것이다.

맨 상위에는 수학, 과학, 그리고 언어적 능력이 자리 잡고 있다.

중간에는 인문학이 있고, 맨 아래에 예술이 있다.

예술 내에서는 또 다른 서열이 존재한다.

음악과 미술이 공연예술보다 상위로 취급받는다.


게다가 실제로 점점 더 많은 학교들이 교육과정에서 예술과목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큰 규모의 고등학교에 미술교사가 단 한 명밖에 없는 경우도 잇고, 초등학교 학생들조차 그림 그리기를 거의 배우지 못한다.


세 번째 특징은 특정 종류의 평가 방식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은 아주 좁은 영역을 평가하는 표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더욱 더 강한 압박에 시달리고 잇다.


왜 전 세계의 학교제도가 이렇게 됐을까?

이것은 문화적인 요인과 역사적인 요인이 섞여있는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내 주장은 교육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제도가 이렇게 된 한 가지 이유는 현대의 교육제도가 비교적 최근인 18,19세기에 만들어진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제도는 당시 유럽과 미국의 산업혁명시기의 경제적 필요에 맞춰 설계됐다.

수학,과학 그리고 언어적 능력은 산업경제 시대의 직업에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교육제도의 형성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대학의 학구적 문화이다.

대학의 학구적 문화는 감성, 육체, 감각, 그리고 우리 뇌 상당 부분의 기능을 경시해왔다.


이러한 결과로 전 세계의 학교제도는 지능과 인간 잠재력에 있어 매우 좁은 관점을 사람들의 머리에 심어주었고,

특정 종류의 재능과 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그런 과정에서 학교제도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다른 재능을 경시했고, 우리의 삶과 공동체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인간 특성들의 상관관계를 무시해버렸다.

이처럼 계층화되고 획일화된 교육은 이런 방식의 학습이 자연스럽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소외시켜왔다.


전 세계적으로 정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것처럼 댄스를 매일 가르치는 학교는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움직일 때만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에 있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어, 질리언 린은 댄스를 시작한 이후로 다른 모든 학과목의 성적도 올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생각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중 하나였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질리언의 인생에서 심리상담가가 해주었던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집중을 하지 못하고 부산하게 구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은 약을 처방받고 얌전히 있으라는 꾸지람을 듣는다.


그리고 현재의 교육제도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식과 학생들이 배우는 방식에 있어 지나칠 정도로 형식적인 제약을 둔다.

학문적 능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다른 종류의 사고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교사가 서술적인 방식으로만 가르칠 때 그 과목에 대해 전혀 흥미를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제도는 갈수록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을 획일적인 방식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설명하는 깨달음의 이야기들이 함의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들만의 깨달음을 찾으려면, 

인간 지능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


                                                     


( 위에 나오는 질리언 린은  초등학교때 ADHD 증상을 보여 특수학교로 보내질 뻔 했는데

훌륭한 심리상담가를 만나 수업중 산만하고 몸을 자주 움직이는 것이 병의 증상이 아니라 

좋아하는 몸놀림에 집중할 수 없어서 였음을 알게되어


댄스학교로 전학하여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영국 로열발레스쿨 졸업후 솔로 발레리나로 대성공하였고

후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등의 안무가로 대활약을 하였습니다. )



나의 댓글 :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 상황에 따라 다른 부담을 자주 느낍니다.
제 아이들을 판단하고 버거워 하고 쉬운 방법이 없나 게으름에 지고 싶을 때마다요. 현 교육이 선택한 학습의 과목 위계라든가 편파적 평가방법은 저나 저의 아이들에게는 잘 맞지 않거든요.

개인적인 성향이나 단적인 게으른 속성의 문제가
학습 부진 또는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
동기부여의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늦게 피는 꽃이야
좀 늦되는 것 같구나
아직 눈이 뜨이지 않은 게야
하면서 아이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윽박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인정하고 일단은 아이들을 심정적으로 지원하는 엄마가 되어 주는게
저의 몫이 아닌가 생각은 하는데 으찌 된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늘 쫓기는 패턴이네요. 그래서, 쉬 짜증을 내고 철없는 엄마로서 거울을 보기가 싫을 때가 참 많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차분하게 "엄마가 너희에게 할말이 있단다. 이불깔고 잘 준비 되면 엄마 불러~" 이러면 대흥분입니다. 우리 엄마가 연중행사로 책읽어 줄래나, 이야기 만들어 들려 줄래나 하며 야단이지요. 최근에는 그날 작정하고 정신줄 놓지 않으려고 애쓴 후 칭찬을 해 주었지요. 차암 좋아하더군요... 근데 저희 집은 자기 전에 책 읽어주기는 커녕 자는 시간을 넘기 일쑤여서 -장난 치느라- 엄마는 뚜껑 열리고 (이미 체력 고갈) 자는게 미션이 될 때가 많아요.


기버님 댓글:
애들과 즐겁게 잘 지내시네요.

좋은 엄마 좋은 선생님의 조건은 아이의 자신감을 꺾지 않는 것,
훌륭한 엄마와 훌륭한 선생님의 조건은 자신감과 함께 열정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합니당 ^^


나의 배움---
부모역할의 단순화~~
자신감과 열정의 지원자...
제가 워낙 촉각이 복잡한 사람이라 단순화를 더 원하기는 하는데...
암튼 애들 키우며 성장한다는게 그런거겠지요?^^
2010. 9. 10. 13:28

한완상 전 교육부 총리님의 인터뷰


가훈: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당당히 지고 겸손히 이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