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가 임영신 진로학교 6강
[진로학교 6강 강의스케치] 세상의 평화를 일구는 어느 공정 여행가의 직업 이야기 (임영신_공정여행가)
2010/12/15 19:38
12월 9일, 이제 진로학교 강의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강의에 임하시는 강사분들의 열정과 수강생들의 진지한 태도, 고민은 변함없음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주 강의는 많은 분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임영신 공정여행가께서 해주셨다. ‘공정여행’ 이란 단어 자체가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말이었지만 그의 강의를 들은 후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좋은 여행, 나아가 성숙한 여행에 대한 관심과 소망이 생겼음을 확신한다.
먼저 공정여행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본다면, 기존의 여행이 가진 한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봤을 때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우리가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로 동남아시아의 멋진 휴양지와 리조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곳에서 소비하는 돈이 주로 그 지역주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매우 낮은 대우를 받으며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단순노무자가 되는 것이다. 그 돈은 그 곳을 개발한 다국적 기업에게 대부분 돌아갈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과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공정여행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의 주된 가치는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단순한 소비가 아닌 관계 맺는 여행”으로 현지인들의 인권과 생명, 곧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그 속에 어울리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임영신 여행가는 2003년 이라크 평화여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나섰으며, 지금은 이매진피스라는 단체에서 많은 이들의 여행 또는 삶을 멘토링하며 아름다운 발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진로학교 강사분들이 모두 그랬듯이 임영신 여행가님도 지금의 삶이 있기까지는 몇몇의 계기와 성장과정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 계기는 17살 때의 일이다. 여행가님의 유년시절은 결코 밝지 않았다. 어두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매우 내성적이고 조금은 어두운 면이 있었다. 그 시절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은 책 읽기와 일기쓰기였다. 그러던 중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 곳에서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해주고 존귀하게 대해주며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여행가님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우며, 보다 가치 있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단순히 청소년기의 친구들을 돕는 일을 꿈꾸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또 사회를 돌아보면서 한국근현대사, 교회사를 알게 되고,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과 다른 모습들, 부정의한 모습들을 접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 정의와 윤리에 대한 가치와 열망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 당시 사회의 어려움에 대해 책임을 실천하는 교회에 다니면서 영향을 받고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명확했던 것은 이 사회의 바닥에서 남을 돕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때마침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에 우연히 보게 된 기독신문을 통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에 지원을 하여 간사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여행가님은 시민운동을 재미있게 배웠고, 일을 하는 가운데 자신이 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근무하던 단체의 총무님을 통해서 그저 직장의 상사가 아닌 인격적이고 따뜻한 멘토링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후 여행가님의 삶에도 하나의 소중한 가치와 목표가 되었다.
첫 시민단체인 기윤실 이후 녹색연합,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등을 거치며 약 10년 가까이 계속해서 시민운동을 하게 되었다. 또한 단순히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닌 각각의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 자연과 생태, 재활용, 여성문제, 인권문제 등 - 본인의 삶에서 통합적으로 융화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던 여행가님의 삶에 드디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 처음 갔었던 일본 여행이었다. 바로 기윤실 간사로 활동할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위안부 할머니 사건의 전범재판이 열리는 현장으로, 깨어 있는 지식인들과 역사가들이 그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일본 할머니들 뿐 아니라, 캄보디아, 필리핀, 중국, 대만에서 오신 할머니들께서 같은 아픔을 나누는 것을 보고, 여행가님은 이 문제가 단순히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의 문제이고 아시아 전체의 아픔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론으로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 여행이 여행가님의 삶의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계기였다.
이후 대학원에 가면서 평화와 아시아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으며 이후 두 번째로 가게 된 여행이 2003년 이라크 평화여행이었다. 여행가님에게는 얼마나 많은 나라를 여행했는지 보다는 얼마나 깊은 여행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가 여행지에 다다를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이라크 현장에서 보고 겪으신 일들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 정도로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과 깊게 소통하는 법, 내가 원하는 대답을 우선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 어디를 가는가보다 그 여행지에서 누굴 만나고 누구와 함께하는가의 중요함 등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상대방을 100%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게 된 시간이었다. 이라크에서 처음 만난 가이드 분이 건넨 “샬롬” 이라는 인사와,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땅을 떠나야하는 여행가님을 향해 “기억할게요!” 라는 인사말을 남긴 아이들까지 모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여행은 나를 바꾸고, 성숙한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는 상태에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인 이라크로 평화여행을 다녀온 그 분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던 여행이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느꼈다. 특히, 아이들의 진로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들의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고 앞길을 고민하게 되는 기회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하고 청산유수 같은 이야기로 긴 시간을 풍성하게 채워준 여행가님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다만 자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명확하다고 하셨다. 삶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우리아이들의 진로 역시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지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을 그저 관광지에서 구경하고 소비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새롭고 따뜻한 울림을 주는 귀한 시간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여행가님은 일본의 피스보트를 소개해 주셨다. 1년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세계를 여행하고 또 배 안에서는 1년 365일 새로운 만남과 배움의 장이 열린다. 그 배의 일정을 계획하고 조율하는 일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모두 맡아서 하고 있다. 그 긴 항해를 통해 또 하나의 착한여행, 즉 공정여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공정여행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여행을 어디로 가는 것보다 어떻게 가는 것을 더욱 고민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