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1. 16:38

굿바이 사교육 - 아즈라엘님께서 푸신 글 퍼옴^^

 

등대지기학교 강의내용이 책으로 엮어진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곁에 두고 보면 든든할것 같아요.

인터파크에서 책 주문하다가 출판사 서평이 잘 나와있는것 같아 올립니다.

굿바이 사교육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도록 힘 모아보아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 / 이남수, 이범, 조기숙, 이수광, 신을진, 허아람, 송인수 저

 

왜 많은 학부모들이 먼저 이 교육 특강에 감동했을까?

“인생의 터닝포인트”(김동현)
“가슴이 먹먹했다”(이혜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최한 시민 아카데미(일명 ‘등대지기 학교’)를 수강한 학부모 회원들이 강의를 듣고 남긴 소감문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사 운동을 하던 송인수 공동대표(전 좋은교사운동 대표)와 학부모 운동을 하던 윤지희 공동대표(전 교육과시민사회 대표)가 2008년 6월에 창립한 시민단체이다. 이들은 사교육 그 자체를 배격하지는 않는다. 부족한 공부를 따라잡거나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사교육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무작정 강요하는 조기교육,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망치는 선행 학습 등은 명백한 거부 대상이다.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등대지기 학교’라는 어른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다. 강사진도 일급이었지만 모인 사람들의 열정이 놀라웠다. 그 교육특강이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바로 [굿바이 사교육]이다.

등대지기 학교를 수강한 학부모들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학부모들은 가슴 시리도록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과 확신을 경험했다. 수강생들은 강의가 끝난 후 2주에 한번씩 정기 모임을 갖고, 학원을 보내는 문제를 놓고 생긴 일에 대해 토론한다.
이들은 말한다. 사교육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일반 학교에 보낼 것이냐, 대안학교에 보낼 것이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막연한 미래의 두려움에 주눅 들지 않는 아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아이, 타인과 소통할 줄 아는 아이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라고.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녀 영어교육법, 스스로 공부법부터 입시제도 흐름을 읽는 방법까지 교육 문제를 후련하고 명쾌하게 풀어냈다.

자녀 영어공부법, 스스로 학습법에서 입시제도 흐름을 읽는 방법까지.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흐름을 짚는다. 교육 문제에 대한 위기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고 해서 ‘교육 쓰나미 시대’라고 명명한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입학사정관제 등 학부모가 관심을 가질 만한 교육문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리 점검한다. 오랫동안 입시 전문가로 활동했던 그가 말하는 사교육의 문제점은 이렇다. “사교육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게으르고 의존적인 학습 습관이 생긴다. 중학교 때 전 과목 과외를 시키는 것이야말로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중학교는 공부기술을 터득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 시기를 학원에 의존해 보내게 되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엄마표’ 영어교육 전문가 이남수씨는
자기가 겪은 영어교육 체험기를 담담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먼저 부모가 영어교육에 대해 주관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영어를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학부모가 처음에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정도라고 대답했다가 계속 기대 수준이 높아진다. 100점도 받아야 하고, 영어로 1등도 해야 하고. 영어로 동네에서 1등 하고 싶고, 옆집 아이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영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남수씨는 그의 딸 솔빛이가 별달리 사교육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 구사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말한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순서로 영어를 익히자고 제안한다.

사교육이 없는 학교 ‘이우학교’ 교감 이수광씨는
학교가 도대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삶과 배움의 형식을 전환시키려고 시도하는 학교야말로 사교육 없는 학교의 궁극적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의 성공과 출세만을 욕망하는 ‘모유 이데올로기’가 교육 위기를 낳는다. ‘시장의 언어’ 만이 판치는 사회 또한 위기를 부추긴다.
2007년 일본의 한 연구소가 한국, 미국, 일본, 중국 4개국 청소년에게 ‘젊었을 때 꼭 해두고 싶은 일’을 물은 적이 있다. 결과가 흥미롭다. 중국 청소년은 ‘어떤 일에도 낙담하지 않는 근성을 키우고 싶다’라고 가장 많이 답했고, 미국 청소년에서는 ‘남과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한국 청소년은? ‘돈을 벌고 싶다’였다.
이수광 교감은 미래 세대를 살아갈 성장 세대에게 필요한 핵심 능력을 네 가지라고 말한다. 질문 능력, 관계 능력, 기획 능력 마지막으로 공공(公共)하는 능력 즉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능력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부모가 아이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신을진 한국사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는
‘스스로 공부법’을 설명한다. 그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신교수는 아이를 키우면서 목표를 ‘1등 아이’에서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부모가 닦달하지 않아도 혼자 공부하는 아이, 모르는 게 있으면 적극 물어보고 혼자 찾아가면서 공부하는 그런 아이 말이다.
먼저 부모가 방향을 잡아야 한다. 아이가 이것만은 지켰으면 좋겠다는 게 있다면 적어보라고 권한다. 우리 아이가 이것만은 지켰으면 좋겠다는, 양보할 수 없는 선이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이의 생활을 관찰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라. 그리고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바꾸기를 권한다. 아이에게 부분적 자율권을 주게 되면, 아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낸다.
스스로 학습법은 곧바로 성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생을 살아가면서 아이가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접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학원을 다녀도 좋다. 하지만 신을진 교수에 따르면, 입에다 떠먹여주는 학원에서는 결코 스스로 공부하는 단계를 가르쳐줄 수 없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그가 보기에 우파와 좌파가 말하는 교육론에는 맹점이 있다. 평준화가 수월성 교육을 망친다는 보수의 주장은 거짓에 가깝고, 유럽형 모델을 말하는 좌파의 주장은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
좌우가 공히 엉터리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선택할 길은 세 가지다. 현 체제에 충성하거나, 탈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다. 자유방임형은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이다. 가장 성공하는 부모는 리더형 부모이다. 아이에게 적절한 지적 자극을 주면서 동기를 부여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리더형 부모가 되려면 사회문제를 알아야 하고, 사회가 바뀌도록 부모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부모가 교육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합쳐야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 구해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인디고 서원 허아람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인문학 사교육’을 해왔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토론하면서,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청소년 활동을 지원해왔다.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조너선 코졸 지음)라는 책을 마치 수업하듯이 청중과 함께 읽어가면서, 허아람 대표는 부산의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이 어떤 창의적 활동을 펼쳐왔는지 설명한다. 인디고 서원의 활동은 인문학 교육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교육 격차 사회와 사교육 해법에 대해 개괄한다. 2009년 3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산하 영아사교육포럼에서 어린이 영어 전문학원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어 유치원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강남 어린이가 24.6%, 비강남 어린이가 1%였다. 출발점이 현격하게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하면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통로가 되지 않는 사회는 쇠락해지고 통합도 불가능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송대표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보기에 대안은 있는데, 대안세력이 없어 이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것이다. 1955년 인종차별에 항의해 버스에서 백인 전용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감옥에 갔으나 결국 흑백 차별의 관행을 깨는 데 기여했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처럼, 누군가 자기 인생을 걸고 나서야 하고, 피해자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언젠가 법·제도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고 그는 강조한다.

<출처 / 인터파크>.


2009. 10. 29. 20:09

<그리스 귀신 죽이기> /서평 펌글

<그리스 귀신 죽이기>, 박홍규, 생각의 나무, 12,000원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해 비판적 생각들이 있어서

권장도서로 삼지 않고 누군가 어떠냐고 물어오면 극구 말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대하는 배경의 밑천이 달려서 적극적일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보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 ) 시리즈가 있다.
매우 선정적인 분위기로 압도하는 소위 재미난 요소를 갖고 
고전을 쉽게 접근하게 하는 학습만화인 척 하면서
어린이 도서관을 일망타진 한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도서관에 복권(여러 권)을 갖추고 있는데 상태조차 너덜너덜
인기폭발을 말해 주는 대출열람 상위권 도서인 것이다.

책을 권하는 사람으로서 편견으로 책을 속단하는 위험을 조금은 알지만 
아무 비판적 사고 없이 아이들이 유행따라 
또는 그저 '고전이니까 / 필수니까' 라는 선택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지 않길 바래왔다.

아래 서평이 나의 생각과 완전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리스신화>가 고전이라는 미명을 벗어야 한다는 맘으로 퍼왔다. 
  
  

불륜·폭력·패륜 난무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그리스의 귀신들

서울신문 | 2009-10-19 13:50:43

[서울신문]귀신이나 신이나 국어사전에서는 모두 '초인적이고 초자연적 위력을 가진 존재'로 정의된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제사로 모시는 조상들은 귀신이라고 하고 제우스, 헤라, 프로메테우스, 아르테미스는 신이라고 할까. 그들을 '그리스 귀신'이라고 부르면 왜 이상할까.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는 그리스 신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이고 음모·계략·살인·절도 등 범죄와 폭력을 일삼는 부도덕한 존재라고 비판했고, 플라톤도 "신화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을 부채질한다."고 신화를 거부했다.

●권선징악조차 빠진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시각은 고대 그리스부터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리스 신화는 학생들에게는 강력 추천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서양 문화, 예술, 지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있고, 알에서 나왔다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알이 변한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 등 신적인 존재가 있지만 그리스 신화만큼 추앙받지는 못한다.

진보 법학자로 꼽히는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그의 최신작 '그리스 귀신 죽이기'(생각의나무 펴냄)에서 거꾸로 뒤집어 그리스 신화를 파악한다.

"그리스 신화는 여러모로 유해하다."는 박 교수는 가부장적 권위성, 세속성, 오락성이 뒤섞인 그리스 신화를 불륜, 폭력, 복수 등이 난무하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의 막장 드라마가 조금 더 낫다. "극단적인 요소들의 뒤범벅으로 오락성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그 외양만은 권선징악이라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띠는 반면 그리스 신화에는 그것조차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제목처럼 '그리스 신'을 '그리스 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서 부정에 가깝다. 그리스 신화에서 주체인 자기는 신과 영웅들이고, 남성에다 지배자이며, 그리스이고 서양이다. 객체인 타자는 괴물이나 여성, 피지배자, 그리스가 아닌 비서양이다. 게다가 사악하고 음탕한 존재들로 묘사된다. 신이나 영웅은 항상 '한번 보면 반하고야 마는' 선과 미를 갖춘 얼짱에 몸짱이다.

그리스 신화는 태생부터 당혹스럽다. 우주와 신들의 탄생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신뢰할 만하다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는 '카오스(혼돈)'에서 '에레보스(암흑)'와 '닉스(밤)'가 생기고, 그 둘 사이에서 '아이테르(하늘)'와 '헤메라(낮)'가 생겼다고 한다. 결국 에레보스와 닉스는 형제 사이인데, 그들에게서 하늘과 낮이 나왔다니, 패륜이라는 것인가. 또 닉스는 혼자서 운명과 죽음, 고뇌, 운명의 여신과 죽음의 여신 등의 자식을 낳는데, 이는 죽음이 여성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가부장적 태도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전지전능한 신 제우스만 봐도 그렇다. 절대 권력의 상징인 제우스는 정복하고자 마음 먹은 대상은 성별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부인은 첫번째 지혜의 여신 메티스부터 마지막인 여동생 헤라까지 무려 다섯명이다.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여인인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백조로 변신했고, 황금비로 변해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에게 내려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그러나 전쟁과 이성의 여신 아테나에게는 정절을 강요한다. 아테나가 고취하는 미덕은 정치적 영지, 용기, 조화, 규율, 자기억제이며 처녀의 전형이다. 인간 여성의 기원도 차별적이다.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은 프로메테우스 때문에 화가 난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판도라를 만들게 했다. '신통기'에는 판도라를 '파멸을 가져다주는 여자들의 종족'으로 표현한다.

괴물을 무찌르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의 모습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이미지이다. 폭압성과 무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는 그 안에 신과 인간, 영웅과 괴물, 남성과 여성 등의 차별구조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신화에 대한 열광은 정신적 제국주의"

저자는 "그리스 신화가 원초적 본능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라고 예찬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음란, 강간의 폭력주의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제국주의, 침략주의, 귀족주의, 영웅주의, 군사주의, 물질주의, 권위주의, 성차별주의, 남성주의, 기계주의 따위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열광은 비윤리적 행태와 서구 중심의 사유를 퍼뜨리는 '정신적 제국주의'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동양에 대한 편견과 폄훼가 묻어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제기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수단이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원적 힘일 뿐이다.

저자는 민족과 계급, 성별 등의 투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 귀신이 추방돼야 한다."고 꼬집는다.

책은 그리스 신화를 읽는 것조차 막아 서지는 않는다. 다만 읽으려면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기를 권한다. 더 멀리는 평화적 질서를 뒤흔드는 서구의 폭력성을 이해하고 서구중심적 사유를 넘어서는 길로 인도한다. 1만 2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08. 9. 16. 13:12

미하엘 엔데의 '모모' --- 김선규 님

[미하일 엔데] 모모

Category :: 영화, 책/책


시간이 항상 모자란 우리에게 들려주는
모모의
시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와 짐 크노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였던 것도 같다. 엔데의 소설들을 보고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싶어 하고, 나도 짐처럼 원래 왕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던 것을 보면, 중학생보다는 국민학생에 가깝지 않았을까? 최소한 정신연령에서는 그렇다고 생각된다. 하여간 예전에 내가 어렸을 적에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지금 내 기억 속에는 당시 최대의 특수효과라고 선전하던 것과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큰 종처럼 맑은 울음소리를 내는” 커다란 흰 용의 모습만 남아있다. 나는 영화는 보지 못하고 당시 문고판으로 나왔던 책을 통해서 “끝없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나도 그런 책을,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 했다. 짐 크노프도 그즈음에 만나게 되었다. 사방이 몇 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에 살고 있는 까만 소년 짐도 “끝없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매료시켰다.

미하일 엔데라는 이름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ABE”라는 이름으로 나온 전집류였는데, 주옥같은 소설들이 엄청나게 많이 실려 있었다. 지금은 안 보이는 걸 보니 출판사가 망했거나, 이 시리즈가 망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이 시리즈로 읽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훌륭한 시리즈가 왜 망한 걸까? 어쨌든, 그때에는 반지의 제왕이 끝없는 산, 끝없는 강 이런 시리즈로 되어 있었고, 호비트 이야기까지 총 7권인가 8권으로 되어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정말 “끝없이” 긴 이야기였다. 이 명작 시리즈에 “모모”가 있었다. 순전히 미하일 엔데의 이름을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언제나 정말 소중하고, 정말 아름답고, 정말 귀중한 것들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모모”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 느낌은 그저 재미있는 상상력이구나 정도였다. 아마도 시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모모
갑자기 회사에서, 주변에서, 서점에서 “모모”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나는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기 드라마에서 “모모”가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는 전혀 몰랐다. 우리를 시간에 쫓기게 하는 원흉 중에 하나인 텔레비전이 시간을 찾으려는 “모모”를 소개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모모”가 “모모”에서 그토록 열심히 뛰어다닌 이유는 빼앗긴 시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도 무척이나 시간을 아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시간표를 적어 넣고, 누구누구의 시간 관리법이니 아침형 인간이니 하는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토록 시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행복을 사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작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데 말이다. 시간을 저금할 수 없는 것처럼..

시간 이야기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여기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고 그것에 절대적으로 묶여 있어서 이 시간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모모”에서 엔데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의 난제였던 시간을 너무나 환상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풀어낸다. ‘언제나 없는 거리’와 ‘아무 데도 없는 집’, 그리고 그 이름도 어려운 ‘세쿤두스 미누티우르 호라 박사’, 귀여운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모모”가 경험한 환상적인 “시간”까지. 우리는 엔데의 상상력을 통해서 시간에 대해서 약간은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지금부터 1,500년 전에 어거스틴은 시간에 관한 날카로운 정말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고백록”을 읽어보면, 그는 정말 시간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과연 우리가 ‘현재’, ‘미래’, ‘과거’라고 구분하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는 그의 “고백록”을 보면서 그의 천재성을, 인간 이성의 날카로움을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모”에서 엔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 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우리는 엔데를 통해서 시간에 대한 통찰력이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모모”가 들려주는 시간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모모는 우리에게 들려준다.

“호라 박사님, 전 정말 몰랐어요. 모든 사람의 시간이 그렇게...”
모모는 적당한 말을 찾으려 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렇게 위대하다는 걸요.”

나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난 정말 몰랐다. “모모”가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인줄을 말이다.

- 알라딘에서 북 리뷰 이벤트를 하더군요.
백수니 책 값이라도 벌자하고 쓴 글입니다.
그냥 끌려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네요.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느끼나 봅니다. 예전에는 별 감응이 없었는데..
2008. 9. 16. 13:09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 --- 김선규 님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Category :: 영화, 책/책


누군지 기억은 안나지만 몇 년 전에 누군가가 준 책이다.
그 때는 그냥 그저 그렇게 읽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니 참 좋다..

이 책을 쓰신 피에르 신부님은 프랑스 사람인데, 프랑스에서 매년 하는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뽑는 투표에서 7번이나 1등을 하셨다고 한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19살에 모든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셨다. 나치 치하에서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셨고, 그 후에는 모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하시던 분이시다.
이 책은 그 분의 삶과 신학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주 좋다.
그 분의 삶이 참 본받을만하고, 그 분의 신학은 이해하기 쉽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복음의 본질을 잘 설명하고 있다.

총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1부 상처입은 독수리들
상처입은 독수리들은 우리 인간을 의미한다. 저 높은 창공을 날고 싶어하고 날 수 있지만, 상처때문에 날지 못하는 독수리들. 그것이 피에르 신부가 말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팡세에서 파스칼이 말한 쫒겨난 왕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이 장에서는 피에르 신부님이 시작한 엠마우스 운동과 여러 상처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확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 복음 등 신학적인 질문에 대한 피에르 신부님의 생각들이 담겨있는 장이다. 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딱딱한 신학을 참 알기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 나라의 많은 교회에서는 펄쩍 뛸만큼 과격한 내용도 있다. 교회 밖의 구원이라던가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 속죄론 같은 것에 대한 부정 등. (사실 한국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여러 가지 신앙은 지극히 편협하고, 전 세계 기독교회의 입장과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아주 소수파 중에 하나이다.) 이 장과 다음 장에는 정말 너무나 주옥같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 몇 구절만 살펴보자.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성 프랑체스코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의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또는 노동조합 책임자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또, 우라가 그동안 전통적으로 받아들였던 그리스도에 대한 대속에 대한 생각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보통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을 했으니, 그 잘못을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이다. 그런데 피에르 신부는 그리스도가 값을 지불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하니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도둑질한 것이다. 이 책에서대로라면 하나님이라는 전원으로부터 코드를 뽑아버린 로보트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속이란 도둑맞은 자가 도둑이 벌을 받는 걸 바라지 않고, 오히려 강렬한 사랑으로 도둑이 훔친 것을 되돌려주도록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그리스도를 말한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전원이 차단되어 실의에 빠진 인간에게 사랑하는 능력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참 공감이 되는 설명이다. 나도 피에르 신부처럼 오랫동안 전통적인 대속에 대한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 계속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보여준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받은만큼, 아니 가급적 더 많이 다른 사람에게 갚아주길 원한다.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미움에는 더 큰 미움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보여준 방식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가장 높은 분이지만 가장 낮아지는 것. 나는 나의 이런 이해와 피에르 신부님의 견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뭐.. 어떤 사람들은 이단 하나 생겼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3부 만남을 향하여
3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중에서 기도에 대한 구절이 나의 관심을 특히 끈다. 나는 예전부터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해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취향때문이다. 나는 큰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것이 잘 맞지 않을 뿐이다.) 그 구절을 옮겨보면,

"사실 끊임없는 기도의 은밀한 상태 속에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모든 간청들이 우리에게 깃들여 있으므로, 그 간청들을 큰 목소리로 소리내어 표현할 필요는 없다. 소리내어 하는 기도는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또, 용서에 관한 이야기도 참 마음에 와 닿는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하느님은 탕자의 아버지와 같다. 우리의 잘못이 어떠한 것이든 그분의 용서는 언제나 주어진다.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같다. 항국적인 용서의 상태인 것이다. 용서란 하느님의 모성적 면모인 셈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의 아이를 용서한다."


요즘들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그림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 다같이 조금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자 노력하는 것. 지금 내 모습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런 모습이 되기를 소망한다.
2008. 9. 16. 12:58

예수의 정치학 --- 김선규 님

존 하워드 요더] 예수의 정치학

Category :: 영화, 책/책


교회에서 책 바자회를 할 때 산 책입니다.
예수의 정치학, 일단 제목이 날 끌었고, 가격까지 참해 바로 질러 버렸습니다. (양장본인데 단돈 2,000원, 게다가 원래 주인이 나처럼 책을 보는 스타일인지 누군가 읽었다는 표시가 거의 없었습니다. ㅋ)
이번에 미국 여행가면서 쉬면서 읽어보자고 들고 갔는데, 실제로 가서는 노느라 못 읽고 조낸 지루했던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몽롱함과 짜증과 배고픔과 불편함을 참으며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존 하워드 요더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매노나이트계의 신학자입니다. (이 사람이 아니고, 매노나이트라는 교파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신학계에서는 아주 유명하죠) 매노나이트는 쉽게 말하면 재세례파이고, (그 중 가장 큰 분파이다) 재세례파는 쉽게 설명하면 종교개혁 당시 등장했던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성인세례만 인정하는 분파입니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아, 유아세례를 받은 성인들에게 다시 세례를 줬기 때문에 재(再)세례파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세례를 또 주는게 뭐가 대수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재세례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기 때문에 이는 매우 커다란 특징이었죠. 게다가, 이 재세례파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극단적인 비폭력을 추구하는 매우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더욱 다른 사람들 눈에 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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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리 요더 선생님도 (요더 선생님하니까 오른쪽의 이 분이 생각나는군요.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런 사상이 어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설파한 책이 바로 "예수의 정치학"입니다. 전 왜 늘 글을 쓰면 이렇게 앞부분이 쓰잘데기없이 길어지는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예수의 정치학은 기독교의 윤리학이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노예제도, 성차별, 폭력사용의 범위, 사형제도 등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근거가 성경에 있는가가 바로 그 물음이죠. 물론 요더 선상님의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 썼겠죠?

그런데 사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저런 얘기 없잖아요? 게다가 있다고 해서 매우 보수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거 같고, 실제로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쳐왔구요. (그래서 요즘 우리 미욱한 백성을 선도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신 우리 지도층 여러분들께서 교회를 참 좋아하시나봐요) 문제는 이 두 가지 입장이 (성경의 윤리학은 보수적이다와 성경과 윤리학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입장) 우리 요더 선생님과 한 배를 탈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요더 선생님은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 선생님의 주장을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합니다. (이 부분이 약간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분이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재해석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성경을 해석하고보니 이런 입장이 나왔다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렇게 어떤 입장이다라고 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런 경향이 보인다 정도로 보시는게 좋을 듯 하네요) 성경의 정치적 해석이 바로 그 방법이죠. 이제 왜 윤리학에 대한 질문은 던지면서 책 제목이 정치학인지 이해가 가시죠?

이 분은 예수님은 매우 정치적으로 움직이셨고, 결국 정치적인 반대에 의해, 정치적인 방법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주장합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도 충분히 정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 분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바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바울 선생에게 흔히 하는 비판 중 하나가 노예제도와 여성차별입니다. 요서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이렇습니다. 사실 노예와 여자는 당시 "인간"으로 취급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통 모인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여자와 어린아이는 포함되지 않지요. 그런데 예수의 복음이 이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이들은 비로서 자신이 처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사상화 된거지요. 즉, 자신도 자유인 남자와 마찬가지로 존엄한 인간임을 깨닿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 선생은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노예와 여자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겠죠. 당연한 거니까요.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가 그 동안 별 생각없이 보던 성경 본문을 한꺼플 열어 준 셈이지요. 이런 식으로 여더 선생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본문들,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본문들의 숨은 의미를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묶어 예수의 정치학에 대한 결론을 내립니다. 이 결론을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요건 스킵.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해석학부터 기독교인과 정치, 성경과 윤리 등 많은 것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매우 고마운 일이지요. 반면에 좀 거시기했던 점은, 이 분의 성경 해석이 너무 연역적이지 않나 라는 겁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원래 생각은 이렇다 (이 이렇다라는 생각이 결국 매노나이트적인 생각이죠) 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여기에 성경본문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단 말이죠. 물론 이 분의 성경해석은 무척이나 탁월해서 (이 분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그 유명한 칼 바르트입니다. 후덜덜하죠) 아마츄어인 저는 감히 반박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뭐랄까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거죠. 결국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겁니다. 뭘 좀 알아야 책을 봐도 이해를 하고, 적용을 하죠. 좋은 책을 읽어도 가슴이 답답한게 아리송하기만 하니...

한 줄로 요약하자면, 좋은 책이라는 겁니다. 성경해석이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치행동 등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사서 읽어보세요.

http://www.thedreamis.com/
2008. 9. 16. 00:41

나들목 필독도서 중에서 --- 이대귀 님

나들목 필독서리뷰 2007.05.18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런 하나님에 대해 너무도 꼼꼼하면서도 장대하게 설명한 좋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 가장 잘 정리된 책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하나에 대해 조직적인 설명을 해내면서도 결코 메마르지 않고 열정적으로 독자를 하나님의 존전 앞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개념을 갖고 있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기막힌 선물이 될 것이며, 하나님에 대해 깊이 있게 정리한 적이 없는 분들에게도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 중 가장 권위있고 정통한 사람 중 하나인 제임스 I.패커의 역작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의 진노 등 복음의 핵심에 대해 목마른 분들에게 진심으로 권합니다.

[기독교의 기본진리]
이 책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예수, 그는 누구인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서부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료하고 명쾌하게 설명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며 설교가인 존 스토트 목사의 명저입니다. 신앙의 여정을 가면서 기초, 기본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재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에 분명한 대가가 있어서 고려할 비용이 있음을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C.S루이스가 진정 천재적 작가임을 증명한 책 중 하나입니다. 스크루테이프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가 풋내기 사촌 웜우드에게 쓴 편지형식으로 이루어진 글로서, 인간의 심리와 죄성에 대해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익살스런 표현으로 인해 그런 통찰력이 가볍게 소화되는 착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가족간의 갈등, 기도의 어려움, 영적 침체, 인간의 본성, 남녀 간의 차이, 사랑, 쾌락, 욕망 등에 대한 저자의 놀라운 통찰로 빛나는 책입니다. 미묘한 거짓말에 속아서 살기 쉬운 우리 시대의 삶에서 귀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서 강력히 추천합니다.

[물한모금, 생명의 떡]
이 책의 저자는 복음전도와 사회정의의 조화를 말하고 실천해내고 있는 로날드 사이더입니다. 그는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물 한모금,생명의 떡'은 현장에서 실천된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책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복음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생명을 전한 실제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음으로 사회정의를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대해 궁금함을 가진 분들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입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버틀란트 러셀의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제목과 대비되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책은 부담스럽고 논증적인 기독교변증서가 아닙니다. 존 스토트 목사가 네번에 걸쳐 이 주제로 설교했던 내용을 다듬고 약간의 내용을 첨가하여 엮은 소책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담백하면서도 명료한 사상은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기독교의 기본진리'와 같은 책보다 더 읽기 쉬운면서도 저자의 원숙한 지혜가 담긴 균형잡힌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지체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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